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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를 처음 봤을 때 두부와 닯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 두부인것도 아니고, 고양이 이름도 두부가 아니다. 진짜 우리가 먹는 '두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겨울이라서 더욱이 그랬을지 몰라도 얼굴에 핏기가 없어 보일 정도로 하얗고 부러울 정도로 마른 아이였다. 방학 때 학원 시간이 바뀌는 바람에 매일 밤 8시에 가던 학원을 4시에 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두부를 닮은 그 아이와 항상 스쳐 지나갔고 나는 그 우연의 타이밍이 너무나도 신기했다. 한달 정도를 그렇게 마주치다보니 그 아이의 이름과 나이 정도는 궁금했지만 나와 관련된 일 아니면 딱히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나였기에 관심을 거두었고 방학이 거의 끝나갈 때 즈음부터 그 아이는 오후 4시에 5단지 앞 씨유를 지나지 않았다. 3월 3일, 새학기 첫날 나는 두부를 다시 만났다. 같은 반에서.
그 아이가 너무 조용했던건지 ,아님 작년에 내가 전학을 와서 그런건지, 한번도 본 적 없었기에 두부가 절대 우리 학교 일리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반이라니!
그 아이의 이름은 전원우였다.
자기소개에서 느꼈지만 내가 전원우를 절대 우리 학교가 아니라고 단정 지을수 밖에 없었던것은 전자쪽이 이유인듯 했다. 뒷문 바로 앞자리에 앉아서 새학기 첫날 자기와 짝꿍이 된 김민규라는 아이와만 하루종일 붙어있었다. 나는 다른사람에게 관심은 없어도 학교일과 학업에는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기에 반장을 했고 4월 말에 있었던 중간고사에서 전교 3등을 했다. 그말인 즉슨, 3월과 4월은 눈코 뜰새 없이 보냈다는 뜻이다. 그동안 전원우는 우리 반 아이들과는 꽤 친해진 듯 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선생님은 아이들의 성화에 못이겨 자리를 바꿨다. 내심 전원우와 짝이 되길 기대했는데, 왠열- 진짜 짝이 됐다!
원우는 낯을 가리는것 같았다. 나는 적극적이고 상업적인 친화성도 좋은 편이다 소심하긴 하지만...
그 큰키에 어울리지않게 손장난을 치고 있는 전원우가 귀여워서 일부러 짖궂은 말을 던졌다.
나, 너랑 짝하고싶었는데 진짜 짝됐어-
내 말을 듣고 당황한건지 반대편을 보고있던 고개를 그대로 둔채 눈알만 도르륵 굴려 날 쳐다봤다.
"왜?"
"어?"
"왜 나랑 짝 하고싶었는데"
"아니 뭐 그냥... 너 귀여워서 !"
"뭐래... 놀리지마"
난 사실대로 말한건데!놀리는거 아닌데! 그렇게 처음 말을 트고 난 후 전원우도 내가 조금 편해졌는지 여자아이들 중 유일하게 나한테는 짖궂은 장난도 치고 카톡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마냥 어리숙하게만 보이고 무표정일때는 좀 무서웠는데 알고보니 전원우는 꽤 웃긴 아이였다. 너무 하이개그를 쳐서 이해를 못한 내가 뭐라고?! 하며 되물으면 짜증을 내긴해도, 볼펜이 없다하면 볼펜을 빌려주고 필기하다가 틀릴걸 미리 생각해 화이트까지 책상에 올려놓는, 나름 섬세하고 착한 아이였다.
그리고 짖궂은 장난이라하면, 예를 들어 컴싸로 내 책상에 온통 돼지라고 써놓는다거나, 신발을 가지고 튀어서 흰양말 신고 온 나의 발을 새카맣게 만들어버린다거나 하는 그런 하드코어의 장난들이었다.
카톡 얘기를 좀 하자면, 그 날은 내가 기분이 너무 안좋은 날이었다. 노잼데이라고 해야하나- 뭔가 살아가는 것에 권태를 느꼈던 하루였는데 우울함을 달래고자 초콜릿을 먹고있던 날 보자마자 놀리기 시작했다.
"야! 봉영희 !! 또 먹어? 너 나보다 몸무게 많이 나가지 않냐? 그만먹어!!"
솔직히 맨날 듣는 말이라서 내가 오버한 경향이 없지 않아있었는데 난 전원우가 나의 우울함을 알아주고 위로해주길 기다렸다. 근데 왠열- 보자마자 하는 소리가 살얘기냐고 왜 ㅠㅠ
"아 전원우 존나 싫어!! 너 진짜 나한테 말 시키지마!!"
그 일이 있었던 점심시간 이후로 전원우랑 한마디도 하지않고, 주번이었던 전원우를 기다리지도 않고, 테런에서 만나자는 얘기도 안하고! 종 치자마자 쌩 하고 집에 와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은 나의 매직데이였고 괜한 히스테리를 부린것 같아 조금 미안했지만 자고 일어나서 사과할 맘으로 잠들었다. 일어나서 폰을 켜보니 전원우에게서 엄청 긴 톡이 와있었다. 지가 그렇게 좋아하는 스폰지밥 짤도 안쓰고 이모티콘 하나 없는 정직한 7줄짜리 톡이었다.
고추바사삭두부
[ 봉영희 미안해 내가 아까는 너무 심했지 나 딴에는 니가 오늘 하루종일 기분 안좋아 보이길래 장난치면서 기분 풀어불려고 한건데 너 기분 상했잖아 맞지? 미안해 항상 장난 잘 받아주는 너라서 너무 쉽게 생각했나봐 내 맘은 그게 아닌데. 아까 사실 청소 끝나고 집 같이 갈때 라면 사주면서 풀려고 했는데 너 갔다하더라 애들이 .그냥 너무 미안하고 화풀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니가 싫어하니까 이제 너한테 장난 안 칠게 진짜 미안]
그 소심한 애가 이 톡을 보내기까지 200번은 더 고민했을걸 알기에 더 웃기고 귀여웠다. 여기까진 외관상 친구 사이이고, 사실 난 전원우를 조금 좋아하고있었다 처음 봤던 날부터.하지만 원우는 날 친구이상으론 생각하지 않는것같아서 이렇게 가깝게 지내는것 만으로 만족하고있었는데 전원우가 날 좋아하구나 라고 느끼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1학기가 끝나갈 떄 즈음, 기말고사도 끝나 매 시간마다 영화를 보여주던 시간이었다. 난 영화 보는걸 좋아하지만 그 영화는 정말 역대급 핵노잼인듯했고 아이들도 진즉에 알았는지 삼삼오오모여 수다를 떨거나 핸드폰게임을 하곤 했다. 나는 무릎담요를 가져와서 책상에 펼쳐놓은 뒤 얼굴을 대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다가 언제 잠이 들었는지 눈을 떠보니까 점심시간인지 아이들이 아무도 없었고 스피커에선 블락비의 로맨틱하게 가 나오고 있었다. 배도 안고프고 졸리지도 않았지만 몸이 축 쳐지는게 그냥 계속 엎드려있기로 했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났고 옆에 인기척이 느껴졌지만 그냥 엎드려있었다.
"야"
"..."
"야 봉영희"
전원우였다. 생긴거랑 다르게 돼지라서 급식을 안먹었을리가 없는데 의외의 인물이었다.
"안자는거 알아 일어나봐"
"...뭐"
" 너 어제 페북 프사 바꾼거 그거 누구야 "
"중학교 친구 .뭐야 관심있어?"
" 너랑 걔, 이름 뭐냐... 부승관- 사겼어?"
"미쳤어?"
"그럼 뭔데.
뭐길래 프사까지 바꿔 고작 생일이라고 그리고 막 생일 편지 탐라에 쓴거 보니까 존나 길던데"
"왜이래 질투해?"
"어, 해. 뭔 사인데? 저번에 폰 보니까 카톡도 하던데"
"미친 소름돋게 왜이래 너 내 폰봤냐?"
"그게 팩트가 아니잖아 너 남자사람친구 나밖에 없는 거 아니야?"
"너랑 걔랑 딱 둘이야 너만큼 친했어"
"나만큼?"
"응 그냥 딱 너랑 나 그정도 친구사이라고! 아니 근데 내가 이걸 왜 너한테 ..."
"...너랑 내가 무슨 사인데 "
"존나 친한친구"
"누가그래 친구라고"
+ 잠 안와서 쓴건데 왜이렇게 설레죠 원우랑 같은반 짝꿍이라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내일은 우리모두 원우랑 사겨요